▶ <브렉시트> 유럽연합(EU) 탈퇴 내용 요약,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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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 과정, EU가입과 탈퇴 이유
EU는 역사는 1951년 설립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모태입니다. 이 당시에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등 6개국이 참여했고 영국에게도 참여를 권유받았지만, 이때는 영국은 가입을 거절하였습니다. 나치 독일에 성공적으로 맞선 유일한 유럽 국가라는 자부심과 주권의 일부나마 내놓는 꺼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성공을 거두자 영국은 1960년에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웨덴, 스위스와 함께 ‘유럽 자유무역연합(EFTA)’을 조직하며 대응하였지만, 이 기구는 초국가적 기구를 구성하지 않는 연합에 불과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유럽의 핵심 국가들로 이뤄진 EEC가 크게 성공하자, 영국은 1961년 EEC에 다시 참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영국에 비우호적인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1967년에도 가입을 못 하게 되었으며, 3번째로 신청한 1973년에 결국 영국은 EEC에 3수 끝에 가입에 성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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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국은 초국가적 EU 기구에 대한 정책적 거부감이 상당히 컸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없애는 ‘솅겐 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고 EU의 공용 화폐 유로가 도입된 뒤에도 자국의 파운드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유럽 내 경제와 정책으로 EU가 받은 충격들에 영국은 유난히 크게 흔들리면서 탈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충격은 2008년의 금융 위기로 이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과 고통 분담을 놓고 나라들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EU 국가들 관계가 크게 흔들렸고 결정적으로 2015년 시작된 EU 이민 정책으로 많은 관계가 틀어지게 됩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도 이민에 대한 반감이 결정적이라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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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하원의원들과 당시 나이젤 파라지 영국 독립당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번의 EU 탈퇴 국민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캐머런 총리는 EU 잔류를 주도했지만, 탈퇴 캠페인을 이끈 보리스 존슨에 근소한 차이인 52% 대 48%로 패하였습니다. 하지만, 후임 테레사 메이 총리는 자신의 EU 탈퇴 협약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했고, 존슨 총리 역시 자신의 안을 통과시키지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지난해 12월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을 실시했고 여기서 그는 '브렉시트를 성사시키겠다'라는 공약을 앞세워 80석 이상 많은 의석을 확보하게 됩니다. 존슨 총리의 EU 탈퇴 협정은 크리스마스 직전 하원에서 승인을 얻었고, 이 법안이 2020년 1월 드디어 법으로 제정되게 되면서 EU 탈퇴 협정이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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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다른 국가들 반응은?
국민투표에서 탈퇴가 결정된 지 3년이 지난 2020년 1월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각)를 기점으로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CC)에 합류 후 47년 만에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영국은 환호와 우려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상태로 여전히 나누어져 있습니다. EU에 잔류하겠다고 표를 던진 스코틀랜드에서는 촛불시위가 열렸지만,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찬성론자들은 런던 의회 광장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영국 의회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은 노래를 부르거나 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했던 나이젤 파라지 브렉시트당 대표의 연설에 환호하였습니다. 파라지 당 대표는 "오늘밤을 축하하자"며 "이것은 위대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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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총리는 나라를 연합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이는 놀라운 희망의 순간이며,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모든 감정을 비롯해 정부로서의 우리가 해야 할 일, 즉 나의 일을 이해한다. 지금 이 나라를 하나로 만들어 앞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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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친EU 시위대는 런던 화이트홀에서 작별을 고하는 행진을 벌였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브렉시트 반대 집회와 촛불시위가 열렸습니다. 스코틀랜드 니콜라 스터전 자치정부 수반은 트위터를 통해 "스코틀랜드가 독립국가로 유럽의 심장부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으며 웨일스 마크 드레이크포드 자치정부 수반도 카디프 지역에서 연설을 통해 웨일스는 "유럽 국가"로 남아있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정책 전문가들은 EU 탈퇴의 계기로 앞으로도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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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도 의견을 발표하였는데 우루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영국과 EU 무역 협상에서 서로 이익을 위해 싸우게 될 것이라고 전했으며 그는 "EU에 기여하고 이를 더 강하게 만든" 영국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했고, EU에서 영국의 마지막 날이 "뭉클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정을 기해 7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나라가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며 "각국에서 꼭 들어야 할 역사적 경고 신호다"라고 말했습니다. 찰스 미셸 유럽 평의회 의장은 "영국이 EU 기준에서 더 많이 벗어날수록 단일 시장에 대한 접근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영국과 EU가 영국 국민의 뜻을 존중해 브렉시트 협정에 동의하게 돼 기쁘다"며 "우리는 이들이 다음 장으로 들어갈 때, 강하고 생산적이며 번영하는 관계를 계속 구축하겠다"라고 밝혔으며 우디 존슨 영국 주재 미국 대사는 "브렉시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지원을 받아왔다"며 "영미의 특별한 관계는 지금 시작된 이 흥미로운 새 시대에 더욱 오래가고 번영하며 더욱더 강하게 성장할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란?
노딜 브렉시트(No-deal Brexit)'란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할 때 EU와 아무런 협정도 맺지 못하고 나오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장은 브렉시트가 실현되도 큰 변화는 없어 영국과 EU는 과도기 동안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역 협정 등 미래 관계 협상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대부분의 EU 법은 전환기간이 종결되는 2020년 12월 31일까지는 계속되며 영국은 EU가 캐나다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에 맞춰 EU와 영구적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상이 무산되면 영국은 2021년 1월 1일부터 노딜 브렉시트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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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브렉시트 발효일인 2019년 3월 29일(현지시간)까지 '하드 브렉시트'파와 '소프트 브렉시트'파가 협상을 타결하지 못할 경우 영국은 EU와 아무런 협정을 맺지 못하고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하드 브렉시트는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고, 소프트 브렉시트란 현 수준에서 영국이 EU와의 관계를 크게 훼손시키지 않고 긴밀한 통상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소프트 브렉시트를 선택할 경우 더이상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EU 단일시장은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게됩니다. 또, EU 내에서 국경과 관계없이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권한인 '패스포팅'제도도 이전과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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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총리는 영국 국내 강경파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작년 7월 12일 '소프트 브렉시트'를 골자로 하는 '브렉시트 백서'를 발간하였지만 하지만 EU와의 협상에서 재차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은 "(EU)집행위원회의 비타협적 태도가 노딜 브렉시트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다"면서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60%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미셸 바니에 EU 브렉시트협상 대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라며 영국의 브렉시트 제안을 밀어냈다면서 "실제 경제와 이데올로기적 순수성 중 무엇을 택할지는 EU에 달려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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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부 전문가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하였지만 한국 기업에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답변하였습니다. 일단, 2020년 말까지는 한국과 EU의 FTA가 그대로 적용되고 2021년 1월 1일부터는 한국과 영국 FTA가 발효됩니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EU의 FTA와 영허를 동일하게 적용해 모든 공산품의 관세 철폐가 유지됩니다. 또한 3년간 한시적으로 EU산 재료를 사용해 생산한 제품도 역내산으로 인정되고, EU를 경유해 영국에 수출한 경우에도 직접 운송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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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앞으로 영국 규정 및 표준이 EU와 달라지는지 주시해야 합니다. 영국의 수입자를 통해 EU로 수출하는 경우나 영국 내 법인에서 EU 국가와 교역 관계를 맺고 경우에는 해당 산업과 관련한 규정이나 표준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규칙과 EU의 규칙이 달라진다면 양쪽 모두의 규칙을 따르기 위한 비용 증가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분간 영국 정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 부진한 산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공공 조달에서도 영국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영국이 자국 산업 보호 태세나 보호무역을 갖출 가능성이 있어 우리나라 기업은 영국 바이어의 동향 및 정부 정책을 지속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은 앞으로 EU 외 국가들과 무역 협상에 자유롭게 임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역 관계자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을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등과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며 미국은 영국과 연내 무역 협상을 마무리하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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